"냉소, 차가움보단 익숙함, 따뜻함이 진짜 힙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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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 차가움보단 익숙함, 따뜻함이 진짜 힙한 것"
  • 채이현 기자
  • 승인 2023.12.22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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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 이종범 인천스펙타클 디렉터
배다리에 위치한 문화공간 '스펙타클타운' (사진=인천in)
배다리에 위치한 문화공간 '스펙타클타운' (사진=인천in)

 

‘힙하다’라는 말을 검색하면 포털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은 정의가 뜬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대중적으로 쓰이는 ‘힙하다’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해 보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원을 따지면 원래 가진 의미와 정반대의 뜻이다. 한국에서 쓰는 ‘힙하다’는 영어 단어인 힙(hip)에 한국어인 -하다를 붙인 말로서 '힙스터스럽다'를 줄인 것이다. 유행을 일부러 거부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추구하는 ‘힙스터’ 같은 무엇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주류와 자신들을 구분 짓기 위해 일부러 비주류임을 강조하는 힙스터가 최신 유행을 따른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힙하다’의 의미가 바뀐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남들과는 다른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핫하다', '트렌디하다' 라는 뜻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롭고 신선하다 싶르면 미디어와 SNS 등을 통해 알려져 금세 유행이 되어버리는 구조적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동구의 오래된 간판을 모은 것 (사진=인천in)
동구의 오래된 간판을 모아 놓은 '인천스팩터클' 사무실 안 장식물 (사진=인천in)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을지로가 ‘힙지로’가 됐듯이, 무엇이 시대의 ‘힙함’을 규정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문화현상과 흐름을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읽고, 지역을 살릴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겉모습과 보여주기로 소비되는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다. 인천에도 많은 청년 기획자들이 지역을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천은 힙한가? 라는 물음표를 띄우고 찾아간 곳은 ‘인천스펙타클’이 운영하는 문화 공간 ‘스펙타클타운’이었다. 올해 12월 초, 인스타그램 1만 팔로워를 달성한 인천스펙타클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로컬 콘텐츠 기획단체다. 이미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라는 소개가 인상적이다. 서울로 출·퇴근 하는데 왕복 3~4시간을 쓰고, 인천에 돌아오면 잠만 자는 삶이 싫어서,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잘 살아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한다. 2016년 이종범 디렉터(인천스펙타클 대표)의 얘기다.

 

'인천스펙타클'의 대표인 이종범 디렉터 (사진=인천in)
'인천스펙타클' 대표인 이종범 디렉터 (사진=인천in)

 

이종범 디렉터의 첫 프로젝트는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이라는 단행본 제작이었다. 그 때만 해도 인천에 대해 소개하는 책들 대부분이 공항이나 차이나타운, 유적지 등을 담았다. “우리가 인천에서 생활하며 실제로 보고, 겪고, 먹고, 노는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우리의 일상이 기억하는 이 도시의 역사는 어떨까, 우리는 언제 무엇을 열망했었나, 그런 얘기들을요.”라며 이종범 디렉터는 얘기를 꺼냈다.

자신의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훨씬 다양하고 큰 그릇이 돼 주었다고 한다.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면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은 그에게도 위기였다. 이종범 디렉터는 당시 많은 이들이 사용했던 ‘클럽하우스’라는 온라인 대화 공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무보수라도 상관없다며 자발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이들을 만났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21년에 발행한 인천 로컬 매거진 「spectacle」 1호다.

 

스펙타클 매거진 및 로컬 에디터 스쿨 결과물 (사진=인천스펙타클)
스펙타클 매거진 및 로컬 에디터 스쿨 결과물 (사진=인천스펙타클)

 

혼자 움직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상근자 3명, 비상근 편집자 6명이 함께 논의하고 기획하는 팀이 됐다. 당연히 활동 내용도 풍성해졌다. 대표 프로젝트는 △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로컬 커뮤니티 프로그램 & 로컬 에디터 스쿨) △ 매거진 「spectacle」 발행 △ 문화공간 ‘스펙타클타운’ 운영이다.

이 중에서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는 인천에서 재미를 찾고 친구도 사귀고 싶은 2030 세대에게 큰 인기다. 202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해 최근 6기가 졸업했다. 인천유나이티드 경기 단체 관람, 이주민이 운영하는 식당 투어, 플로깅(걸으며 쓰레기 줍기), 재미있는 행사 참여, 섬 여행, 노포기행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설명과 함께 다녀보는 동네 탐방도 있다. 한 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취향에 맞는 공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 마음을 나눌 좋은 동료와 이웃이 필요하다고 믿는 이종범 디렉터가 제안하는 진짜 인천 투어는 이런 것이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모임 사진 (사진=인천스펙타클)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모임 사진 (사진=인천스펙타클)

 

자체 사업 외에도 공공기관 또는 민간과 함께하는 사업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힙해보이는 <동구르르 동구산책>과 <Y2K 부평 야외 방탈출>에 대해 물었다.

 

'동구르르 동구산책' 중 해안산책로 걷기 명상 (사진=인천스펙타클)
'동구르르 동구산책' 중 해안산책로 걷기 명상 (사진=인천스펙타클)

 

이종범 디렉터는 “<동구르르 동구산책>은 인천시와 동구가 함께한 사업이다. 이걸 기획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누군가에게는 삶인데 외관이 예쁘다는 감상으로 보고 지나치는 소비 방식이 아니었으면 했다는 것이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호스트가 되어 직접 동네 소개를 해주는 프로그램의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코스모스화장품’에서는 생선을 판다는 얘기 같은 것이다.

실제로 생선을 파신다. 화장품이 잘 안팔려서 생선으로 바꾸신 건데, 구청에서 간판을 바꾸라고 해도 굳이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신다. 또 한 번은 화도진중학교 학생 단체 20명이 참여했는데, 수집해 놓은 간판들을 보면서 학생들이 그러는 거다. 우리 동네가 되게 별로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멋있는 곳 같아서 자부심이 든다고. 그 때 보람을 느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작은 변화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라고 회상했다.

 

'Y2K 부평 야외 방탈출'에 사용되는 미션 지도 (이미지 제공=인천스펙타클)
'Y2K 부평 야외 방탈출'에 사용되는 미션 지도 (이미지 제공=인천스펙타클)

 

이어서 지난 17일(일)에 1회차를 진행하고, 오는 23일(토)에 2회차를 진행할 <Y2K 부평 야외 방탈출>에 대해 소개했다.

“부평문화재단의 역사문화아카이빙 사업을 함께하게 됐는데, 보통 부평의 역사라고 하면 조병창, 캠프마켓, 가수들의 얘기를 많이 해왔던 것 같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인천스펙타클만이 할 수 있는 주제가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역사 말고, 내가 기억하는 부평의 과거에 대해서 시민들과 나눠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평이 가장 북적였던 2000년을 생각했다. Y2K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묘하게 맞물려있던 해였다. 스티커 사진기, 캔모아(생과일주스 카페), 부평지하상가의 똥싼바지, 레드락, 진선미 예식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곳들이 부평에 많다. 현재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고 사라진 곳도 있는데, 이걸 지도에 표시해주고 참가자들이 찾아가 미션을 수행하는 형태의 야외 놀이를 기획했다. 요즘 많이 하는 ‘방탈출 게임’의 야외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90년대 생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000년대 생이라고 했다. 2000년대 생 같은 경우에는 이 때 막 태어났을 시기라 기억이 거의 없을 텐데도 자기가 사는 동네의 옛 모습이 궁금해 참여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놀이로 풀어내면 와 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구란 미래를 걷습니다'라는 제목의 책, 인상적인 한 페이지(사진=인천in)
'동구란 미래를 걷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의 한 페이지 (사진=인천in)

 

대화의 중심축이었던 힙한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하다가 이종범 디렉터는 갑자기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구 어르신들이 얼마나 힙하시냐면, 이 앞 철물점 할아버지는 줄자나 망치 같은 걸 사려고 가면 젊은 사람이 왜 사냐며 빌려주셔요. 알뜰살뜰 챙겨주시는 거예요.”

정말이지 힙한 어르신이 맞는데, 흔히 말하는 쿨함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쿨(Cool)함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하면 좋겠냐, 사람의 체온 같은 것이 느껴지는 힙함은 어떤 단어를 써야겠냐고 이종범 디렉터에게 물었더니 핫(Hot)보다는 웜(Warm)이란다. 원도심으로부터, 서울과 가깝지만 그래서 더 잘 모르는 인천에서, 정확히 36.5℃의 힙함을 전파하고 있는 청년기획자다운 단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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