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자락길엔 특별함이 있다
서울 도심 속에 걷기 좋기 길이 있다. 그것도 산속 숲속 길이다. 서대문 안산자락길이 그곳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7km의 안산자락길은 이른바 순환형 무장애 숲길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즈음 새롭게 조성한 황톳길이 보인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지나면 곧장 만난다. 겨울철이라 비닐터널을 길게 둘러쳤다. 눈비가 와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길이는 500여m. 그러니까 왕복 1km 가까이 된다. 헝겊 덧신을 신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맨발로 부드러운 황토를 밟으며 걷는다. 맨발 걷기 열풍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은은한 음악이 낭만을 부른다.
안산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가벼운 등산과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숲이 정말 울창하다. 나무 하나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어 키재기를 하는 것 같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편안하고 상쾌하다.
복잡한 도심 숲에서 만난 신선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한다. 누군가 말했다. 숲은 위대한 경전이고 스승이고 도반이라고. 안산 자락길을 천천히 걸으면 힐링하는 느낌이 참 좋다.
사철 푸른 소나무 숲을 걸을 땐 또 다른 느낌이다. 추운 겨울 소나무는 진가를 드러낸다. 따뜻하게 품어주는 나무! 생명체가 착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산은 산이다. 가파른 곳에선 숨이 헐떡인다. 군데군데 의자가 있어 지친 다리를 잠시 쉬게 한다. 적막한 숲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바쁘게 살다 크고 작은 두려움이나 근심도 잠시 내려놓는다.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 여유가 좋다.
활엽수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수북이 이파리를 떨궈 놓았다. 푹신푹신하다. 겨울나무는 비록 앙상하지만 나름 겨울을 버티면서 한 해를 준비하고 있으리라. 속으로 꽃도 열매도 품고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면서 묵언수행 중에 희망을 잉태할 것이다.
안산 봉수대에서 서울을 바라본다
편안한 데크길을 걷다 안산 봉수대로 향한다. 어느새 무악정에 도달. 여기서부터는 400여m를 오른다. 좀 가파른 계단길과 고갯길이다. 며칠 전 내린 눈길이 미끄럽지 않을까 했는데, 사람들의 잦은 발길에 걷기에 불편하지 않다. 다행이다.
눈에 들어온 겨울 풍경이 너무 좋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품속에 들어오면 모든 게 선물 같다. 늘 쫓기며 살다 바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내 주변과 함께하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문득 느껴보는 평화!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작은 돌탑 하나. 누가 이렇게 돌을 쌓았을까?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닐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탑에 돌 하나 얹었다. 마음의 기도를 올린다. 두려움이나 걱정을 떨쳐버리고 새 희망을 담아서.
오르는 길에 산새들이 떠든다. 참새 소리가 짹짹, 작은새 박새와 딱새도 연신 이 나무 저 나무로 자유롭다. 사진에 얼굴 한 번 담으려는데 곁을 주지 않는다. 겁 많은 녀석들이다. 어디든지 걸림 없이 맘먹은 대로 오간다. 내 것이라 우기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 녀석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한참 바라본다. 뱁새라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녀석 뛰노는 모습이 참 귀엽다.
산행의 묘미는 정상에 오르는 재미도 있지만, 한발 한발 내디디며 자연의 벗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새 안산 정상.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를 중심으로 돌을 성처럼 튼튼하게 쌓아놓았다.
안산은 원래 무악(母岳)이라고 했다. 동봉과 서봉의 두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산세가 마치 말의 안장 즉 길마와 같다고 하여 안산(鞍山)이라 불렀다. 안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무악재는 지금이야 탄탄대로이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혼자서 넘지 못할 정도로 험한 고갯길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이 한눈에 다 보인다. 가까이 인왕산과 도성 성곽이 뚜렷하다. 그 너머 북한산 그리고 저 멀리 남산타워가 버티고 있다. 도심에서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도 지척이다. 그리고 수도 서울의 빌딩 숲이 발밑에 끝이 없다.
다시 찾고 싶은 산, 안산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안산 봉수대! 이곳 봉수대는 동, 서 두 개의 봉수대 중 동봉수대터라 한다. 국경에서 일어난 국가 위기상황을 조정에 알려주기 위한 전령 역할을 했던 봉수대의 흔적이 역사의 일기처럼 이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이곳은 산 위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어서 인근 주민들은 새해 아침 이곳을 찾아 새해 소원을 기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이지? 수많은 사람과 차량이 붐비는 수도 서울이 적막하다. 높은 곳에서 멀리서 보면 세상은 고요하게 느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잠시 세상 밖을 떠나 가까이 있는 자연과 함께하니 분주하고 조급함을 내려놓은 평화가 찾아왔다.
찬 바람에 코끝이 시리지만 햇살이 내 몸을 감싼다. 자연의 소리, 눈에 펼쳐진 풍광이 메마른 겨울 속에서 물기를 느끼게 한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안산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는 더 푸르고 생기를 되찾아 멋진 인생 사진 하나 선물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