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금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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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산을 다녀와서
  • 유성숙
  • 승인 2024.01.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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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유성숙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반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하는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을 신설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주금산 정상
주금산 정상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나를 이끌었다. 일기 예보에는 비 소식이 있었고, 병원에서 퇴원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머니 때문에 망설임이 있었으나, 부지런히 식구들을 챙기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반가운 글타래 회원들과 청량리역에서 만나 출발했다. 아! 정말 얼마 만에 와 보는 역사인가? 예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백화점과 연결된 현대적인 건축물로 깔끔하게 단장한 청량리 역사의 모습에 새로운 감회가 느껴졌다.

선생님을 비롯해서 총 일곱 명이 시외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행이 날씨는 맑았다. 그렇게 간 곳은 남양주시에 위치한 주금산이다. 주금산(鑄錦山)은 해발 813미터이고 ‘산이 아름답고 부드러워 일명 ‘비단으로 만든 듯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일명 ‘비단산’이라고도 불린다.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을 달려왔는데 마치 지구의 오지에나 온 듯 깊은 산속이 적막했다. 주중이어서 그런지 산행을 하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산길을 걷는데 콸콸콸 흐르는 물소리만 우렁차게 들려왔다. 며칠 전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계곡의 물은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고 시원했다. 정상으로 오르다가 나무 그늘이 있고, 발도 담글 수 있는 계곡에서 각자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펼쳤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가래떡과 도토리묵이다. 다른 회원들도 각종 장아찌와 밑반찬을 가져오셨다. 새삼 알게 된 사실은 회원들이 감성적인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살림꾼이 많다는 것이다. 숲 그늘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먹는 점심은 특별했다. 메뉴도 다양했고,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이라 맛도 훌륭했다.

점심을 막 먹고 났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의 오찬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아쉽지만 정상 산행을 접고 우리는 하산을 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었다. 잠깐 틈을 내어 우리는 주금산 입구에 있는 몽골문화촌을 들러 보기로 했다.

몽골전시관과 몽골 민속 예술 공연장이 있는 곳이다. 안내 책자를 보니 남양주시가 몽골 울란바타르 시와 우호 협력 관계를 맺고 문화교류 증진을 위해 2002년부터 몽골 민속 예술 공연단을 초청한 내용들이 사진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었다. 최후의 유목민인 징기스칸 후예들의 전통 노래, 악기 연주, 춤의 향연 등 이색 문화 체험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처음에는 몽골문화에 대한 동영상을 삼십 분간 보여주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몽골 청년이 부르는 전통 '허미'는 특별했다. 마치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한 목소리에서 두 가지 소리를 내는 창법인 허미는 몽골의 국제 문화 유산 중 하나이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바람소리, 동물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 등이 두 개 이상의 음으로 배와 목을 통해 휘파람 소리처럼 동시에 발성되는게 참으로 독특하고 신기했다.

몽골 전통 악기 중에 ‘마두금’이라는 게 있는데 새끼 낙타를 품지 않던 어미 낙타에게 마두금 연주를 들려줬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새끼 낙타를 품었다는 이야기는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주금산에 와서 오랜만에 사람 이외의 동물이나 식물,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인간의 삶에 대한 사유를 넓게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몽골 여가수가 부르는 우리 노래 “사랑 밖에 난 몰라”는 감정 이입이 더 잘 되었다. 내용도 모르고 남의 나라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인데 구성진 목소리에서 어떤 감정이나 분위기가 이해되는 듯 했다. 그 옛날 몽골족의 침입을 받은 바 있는 우리의 가슴 밑바닥을 쓸어내리듯 위안과 위무가 느껴졌다.

공연은 새로운 문화에 대한 신선한 경험이어서 모두들 재미있게 구경을 했다. 무대 상연이 끝난 후 저녁 식사로 우리는 몽골식 양고기를 먹었다. 담백하게 구운 빵을 잘게 찢어서 깻잎장아찌에 곁들여 먹는 고기 맛이 괜찮았다. 주인은 서비스로 매실주를 내왔는데 몽골과 한국의 퓨전식 음식이 입맛에 잘 맞았다. 우리의 옛날 정서를 만나는 듯 푸근하고 따뜻한 저녁이었다.

몽골촌을 뒤로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나오는데, 어느새 캄캄한 어둠이 덮였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갔다. 오늘 하루, 충만한 시간들로 나는 한동안 지치지 않고 일상의 삶을 이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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