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쓰는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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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쓰는 원고
  • 위원석
  • 승인 2024.01.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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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따라하기]
(3) 원고 만들기 – 위원석 / 딸기책방 대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는 1991년 발표되어 삼십 여개 언어로 번역되고 2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는 1991년 발표되어 삼십 여개 언어로 번역되고 2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당신은 이 글의 독자가 아니다

지난 연재에서 글감과 독자를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두 가지가 정해졌다면 내 책의 집필 방향이 어렴풋이 설정된 셈이다. 다음 순서는 방향에 맞추어 꾸준하고 성실하게 원고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이때, 무심코 쓴 첫 문장이 단박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술술 이어진다면 계획된 집필은 순탄하게 완성되겠지만, 책 한 권을 쓰는 과정에서 이처럼 마법 같은 일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막상 글을 쓰자고 모니터를 켜도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고, 첫 문장을 시작했다가도 이내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어찌어찌 몇 줄을 썼다가도 그다음 줄을 이어가기 어렵고, 애초 계획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빠져들기도 한다. 내가 쓴 원고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던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혹은 이삼일 동안 시도하다가 집필 작업의 초입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불편함에 묵묵히 맞서며 몇 문장을 완성하고 몇 페이지 분량의 원고가 완성되면 어느 순간 막혔던 배수관이 뚫린 것처럼 툭 치고 나가며 원고 집필에 속도가 붙기 십상이다.

그 사이, 불과 몇 시간 혹은 하루 이틀 동안 모니터를 마주하는 사이,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자기가 쓰고 있는 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글쓰기에 속도가 붙고, 그러다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정확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쓴 책을 독립출판물로 만들겠다고 계획하는 이들 중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독하는 독자가 많고, 그만큼 좋은 글에 대한 판단 기준 또한 엄격할 확률이 높다. 이들은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을 독자의 시각에서 보기도 하는데, 이때 엄격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다 보면 자신이 쓴 글이 눈에 차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얼마간의 글쓰기 노력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글을 잘 쓰는 노하우가 아니라, 스스로가 전업 작가와는 다른 아마추어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쓴 글을 그것 자체로 인정하고 자랑할 줄 아는 마음이다.

처음 쓰는 책의 원고가 수십 년 동안 직업적으로 글을 쓴 작가들과 같은 완성도이길 바란다면 그 또한 무리한 욕심이 아닐까? 게다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작가들조차 원고를 쓰고 고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괴로움과 외로움을 겪는다고 하지 않는가?

글쓰기의 방향이 정해졌다면 집필에 속도를 붙이는 것이 관건이다. 욕심을 버리자. 쓰고자 한 내용을, 나의 독자에게 말하듯이, 편하게 쓰자.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원고를 고칠 기회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있다.

 

퇴고와 탈고의 시간

우리나라 독자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구상한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개미에 푹 빠져버린 열 살 소년은 개미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고 한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차이를 만든 것은 원고가 아니라 퇴고 과정이다. 베르베르는 이 이야기를 20년 동안 100번이 넘게 고쳐 썼는데, 조금씩 교정을 본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다시 썼다고 한다. 그의 서른살 쯤 세상에 나온 세계적 베스트셀러 《개미》는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100번을 고쳐 썼다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열 살 아이의 원고도 퇴고를 통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초보 작가 입장에서는 일단은 쉽고 편한 마음으로 쓰고, 차차 원고를 고쳐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퇴고(推敲)는 처음 쓴 원고를 바탕으로 수정하고 보완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뜻하는 것으로, 꼼꼼하고 성실한 퇴고는 원고의 질을 높이고 독자와 정확하게 소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처음 원고가 완성되었다면 빠진 부분은 넣고, 중복된 부분은 덜어내며, 더 효과적인 표현이나 구성을 모색하면서 더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100번의 퇴고를 거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번 또는 오랫동안 퇴고한다고 해서 원고가 반드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형편과 정도에 맞추어 원고를 다듬다 보면 이쯤에서 만족해야 할 순간이 온다. 탈고의 시간이다.

탈고는 원고를 완성하여 작가의 손에서 완전히 털어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마무리 과정에서 완성도가 결정된다. 탈고를 앞두고 몇 가지 포인트는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첫째, 탈고하려는 원고가 애초 의도했던 바를 성실하게 표현했는지 정독한다.

둘째, 그릇된 내용이나 부정확한 내용은 없는지 사실을 확인한다. 미심쩍은 부분은 반드시 역사적 고증이나 팩트 체크를 해야 한다.

셋째, 비문이나 비어, 틀린 표기는 없는지 문장을 확인한다. 여전히 전문 편집자가 문장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한국어 맞춤법/문법검사기’를 검색하여 활용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첫 문장을 써야 모든 게 시작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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