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3년,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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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3년, 만난 사람들
  • 유성숙
  • 승인 2024.03.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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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유성숙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영등포에서 남편과 삼 년간 고물상을 했었다. 그가 해오던 인테리어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접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트럭을 몰고 길바닥에 있는 고물을 주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버리게 되는 모든 것이 알고 보니 다 돈이 되는 것을 알았다. 헌 옷, 신문지, 파지, 병, 후라이팬, 플라스틱류, 냄비, 폐가전제품 등등이 모두.

초창기에는 1톤 트럭 한 대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3대로 늘렸고 기사도 고용했다. 나는 카운터를 보고 리어카로 고물을 가져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남편은 공사 현장이나 건물을 찾아다니며 고물을 사거나 영업을 뛰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영등포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소문까지 났는데 돈 버는 일도 다 때가 있다는 걸 깨닫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는 주차장 한 부분을 세 얻어서 가게를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그 자리를 비워줘야 해서 다른 공장이 폐업한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잘 나가던 사업이 계속 매상이 부진했다. 알고 보니 가까운 곳에 큰 고물상이 있어서 우리와는 가격 경쟁이 안 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고물꾼들이 어려운 사람들이라 돈 안 되는 물건은 우리 집으로 가져오고, 값 나가는 고물들은 다른 가게로 가져가고 있었다.

장사도 안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가깝게 지내던 동생이 우리 모르게 열쇠를 만들어서 가게 물건을 빼돌린 것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어느 이른 아침 가게 쪽문에서 나오는 그 녀석과 마주치게 되었다. “너 왜 거기서 나오니?” 소리쳤으나 얼마나 가슴이 떨리고, 배신감에 몸이 떨리던지. ‘사람처럼 무서운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3년 동안 고물상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아무 물건이나 집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가져오는 바람에 ‘장물’이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일도 경험했다. 아주 작은 리어카를 끌고 오는 여자 어르신이 있었다. 체격이 나보다 작아서 장부에는 ‘꼬마 할머니’로 적었다. 그분은 자식들이 일을 못하게 리어카를 망가뜨리고 없애도 여전히 일을 하셨다. 월세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사셔도 되는 분인데 평생 개미처럼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고물 일을 해서 돈이 생기면 도박을 하거나 경마장이나 술집의 여자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과 고물은 비슷한 면이 있다. 고물도 처음에는 새것이어서 얼마 동안은 반짝이는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나중에는 고물상으로 가게 된다. 사람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나름 빛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나이 들면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진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듯이 넘어졌던 경험이 힘이 되어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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