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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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름다운 이유
  • 인천in
  • 승인 2024.06.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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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59화

 

 

어릴 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고 나서야 겨우 압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오늘따라 유난히도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제 말을 그분들이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이야기는 《언어의 온도》(이기주)에 나오는 부모의 자식 사랑 이야기 세 편을 간략히 소개해드립니다.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비 오는 날, 아빠와 어린 자녀가 하나의 우산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빠는 아이가 비 맞지 않게 우산을 아이 쪽으로 기울인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빠, 옷 젖었지?”

“아니.”

거짓말이다. 한쪽 어깨는 이미 젖어 있다. 이렇게 부모는 우산 밖으로 밀려난다. 어쩔 수 없이. 아니, 아이를 사랑하니까.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편의점에 4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온다. 낡은 모자를 쓰고 작업복에 묻은 흙을 털어낼 때마다 뿌연 연기가 난다. 힘겨운 하루를 보냈나 보다. 계산을 끝낸 따뜻한 즉석 과자를 점퍼 안에 넣는다. 의아하게 여긴 직원이 물어보자, 남자가 말한다.

“하하하. 애들 주려고요. 과자가 식으면 안 되잖아요.”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인 ‘너’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존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너’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존재가 부모님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퇴근길마다 마주치는 모자(母子)가 있다. 아들은 40대 중반이고, 엄마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다. 아들은 늘 목발에 의지해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엉거주춤 힘겹게 걸었다. 자세히 보니 작은 체구의 엄마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넘어질라치면 엄마는 황급히 아들을 일으켜 세운다. 날씨가 궂은 날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런 궂은 날에는 그냥 집에 계시지.’ 하는 생각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당장 비라도 쏟아질 기세였다. 그날도 아들은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한 손엔 목발 대신 얇은 지팡이가 들려 있다. 그런데 전과 다른 모습이다. 사내 뒤를 지키던 엄마가 안 보이는 거다. 며칠 뒤 경비아저씨로부터 사연을 들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몸이 불편한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엄마는, 종종 뭔가에 홀린 것처럼 “나 때문에 아들이 아픈 건가 싶어. 미안해서, 내가 정말 미안해서 마음 편히 죽지 못할 것 같아!”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엄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심한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거다. ‘남은 날이 길어야 1년’이란 시한부 통고 앞에서도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엄마는 틈을 내서 산책에 나섰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공원을 거닐었다. 아들과 함께.

 

아들을 억지로 끌고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머지않아 엄마 없이 혼자 생활해야 하는 아들이 어떻게든 두 발로 서서 삶을 헤쳐 나가게끔 걷기연습을 시킨 겁니다. 이것이 다리가 불편한 아들을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어깨가 젖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에게 우산을 기울이며 거짓말하는 아빠, 과자가 식지 않게 하려고 품속에 살며시 넣으며 아빠,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내’가 홀로 살 수 있게 자신의 암을 감추며 아들과 산책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엄마!

이들의 사랑은 위대하고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의 거짓말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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