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일환, 〈전시전시(展示傳時)〉 31일 개막
“처음이라서요.”
부모와 친구들 앞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왜 그렇게 떨렸냐는 질문에 아이는 답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다수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꽤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약간의 흥분과 떨림, 어수선한 마음과 기대가 섞인 얼굴, 8월의 마지막 날 문을 연 〈전시전시(展示傳時)〉의 풍경은 그랬다.
<전시전시(展示傳時)>는 인천중구문화원이 운영한 어린이·청소년 시각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결과 발표회다. 프로그램은 지난 7월 6일부터 8월 31일까지 약 두 달간 <예술藝術+가加 = 재주에 재주를 더하다>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생까지 10명의 학생들이 모여, 현대미술에 대한 강의와 전시 공간 관람 및 체험을 토대로 직접 창작하고 전시 기획까지 했다. 전시는 8월 31일부터 9월 13일까지 인천중구문화회관 1층에서 열린다.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4 인천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의 일환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을 중요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에서도 작품계획서 초안과 활동지, 드로잉 등을 모아 놓았고,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전시장 한 편에서 상영했다. 일회성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창의적인 문화예술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성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작품으로 표현하게 했는지 강사들에게 물었다.
“현대미술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회화, 조소, 미디어, 설치미술 같이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게 평면과 입체로 나누어 함께 살펴봤어요. 인천아트플랫폼, 세계문자박물관, 인천대학교 미술 실기실 등 현장을 방문해 직접 분위기를 느껴보게 했고요. (정다운, 강사)”
“유화 물감, 아크릴, 클레이, 먹 등 다양한 미술 재료를 직접 체험하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를 고르게 했어요. 작품의 주제가 될 키워드를 써 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스케치를 한 후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장지윤, 강사)”
2시부터 시작된 오프닝 행사에서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수줍게 이야기를 했지만, 주제는 명확했다. 모두가 숨죽여 한 명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야기가 끝나면 응원과 축하의 박수를 쳤다. 각각의 작품은 주제와 표현 방식이 모두 달랐고, 개성이 뚜렷했다.
“밤은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고래가 밤 하늘을 날아 다니는 그림을 그렸다. (홍예연, 선화여중 1학년)”
“꿈을 장래희망, 잠잘 때 꾸는 악몽, 낭만적 몽상(로망)으로 나누어 표현했다. 내 그림을 통해 모두가 잊고 있던 꿈을 떠올렸으면 한다. (이지후, 인천서창중 3학년)”
“새에게는 새장이 세상의 전부다. 답답함도 느끼고, 두려움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장 밖의 세상을 꿈꾸게 된다. (박민서, 신광초 6학년)”
“경주에서 본 동궁과 월지, 노을을 떠올리며 그렸다. 특히 노을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박훈우, 신흥중 1학년)”
“네 개의 계절을 네 개의 컵에 담긴 음료로 표현했다. 사계절이 컵 안에 담겨 있다. (김나래, 미송중 1학년)”
“사회에 던져진 우리를 표현했다. 바다 속에 버려져 가라앉고 있는 듯한 이것의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유효나, 용유중 2학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다고 느낀다. 화려한 거리에 꽉 차 있는 사람들 가운데 검은 사람이 있다.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오유경, 공항중 1학년)”
“오래된 라디오와 신형 라디오가 함께 놓여 있다. 겉모습과 다른 소리를 품고 있다. 나, 친구, 가족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면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홍세명, 신광초 6학년)”
“여름 바다에서 놀고 간 사람들의 흔적과 그 위의 새를 그렸다. 바다에 노을이 지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김유래, 미송초 6학년)”
“좋아하는 아이돌 스키즈(skz, 스트레이키즈)의 응원봉인 나침봉이다. 주위에 skzoo라는 캐릭터들을 표현했고, 스키즈의 데뷔일도 적었다. 스키즈를 바로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유효정, 용유초 5학년)”
작품 설명을 다 듣고 나오는 문 옆에 학생들이 직접 쓴 '예술가'의 뜻이 모여 있었다. 단순하고 명쾌해서 아름다웠다.
두 달 간 아이들의 작업을 옆에서 바라본 강사들은 모두가 뭉클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하는 것은 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이 사회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다. (김민정, 강사)”
“제가 더 배우고 가는 느낌이다. 친구와의 관계,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의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어떤 부분에선 제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기도 했다. 오히려 접근 방식이 말랑말랑해서 표현력이 좋았다. (김민지, 강사)”
인간은 무수히 많은 ‘처음’을 쌓으며 성장한다. 설레고 두려운 처음을 딛고 무엇인가를 해 내는 경험, 그 경험의 숫자가 나이 아닐까? 삶이 권태롭고 하는 일이 익숙해지다 못해 지루해질 때 처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때의 강렬한 기억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처음’을 만들어 주는 기획,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온전히 안아주려는 마음이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결과로 평가당하지 않고 진심을 이해받은 경험이 많을수록, 앞으로 닥칠 무수한 처음에 맞설 힘이 생길테니 말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이게 맞는지 묻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강사들은 “지금 너희의 생각이 틀리지 않으니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응원한다.”고 마음을 전했다.
오프닝 행사가 끝나고 기자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번에 완성한 작품에 대해 1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겠냐고 말이다. 다양한 대답이 나왔지만 합의 끝에 모두가 스스로에게 10점 만점을 주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그만 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끝내고 나니 후련하단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해서 좋았고, 간식을 줘서 좋았고, 함께 한 친구들이 좋았단다. 이 여름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그들 자신의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