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여성들의 고단함, '문화'로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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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여성들의 고단함, '문화'로 치유한다
  • 이장열
  • 승인 2012.11.2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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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문화•예술교육](7) ‘약손을 가진 사람들’ 성효숙 감독
취재: 이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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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은 공동기획으로 지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찾아가는 ‘날아라~ 문화·예술교육’ 연재를 시작한다. 어린이와 청소년, 시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다양하게 진행되는 인천 문화예술교육의 현주소와 의미를 짚어본다.
 
지난 11월 20일 화요일 오후 7시. 해는 벌써 사위였다. 어둡다. 옷깃을 여미는 손끝으로 초겨울 바람이 제법 매섭다. 부평구 십정동에 자리한 부평구 동주민자치센터 3층 <요가/스포츠댄스실> 문틈 사이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곧장 열고 들어가기가 짐짓 했다. 삐꼼 문을 열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때늦은 저녁을 김밥과 만두로 떼우고 있었다. 논두렁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둘러 앉아 식은 밥을 먹는 아낙네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저녁 7시부터 뜨문뜨문 한 사람씩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김밥과 나무 젓가락을 성효숙 작가가 건네줬다. 올해 4월 3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9시 이후까지 진행되는 ‘이야기가 있고,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치유가 있는’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약손을 가진 사람들’(이하 약손)의 감독이 성효숙 작가다.
 
7시부터 시작되는 프로그램에 모두 모이기가 힘든 사람들이 지난 4월부터 매주 장소를 옮겨가며, 악착 같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약손의 프로그램이 참여하는 이들은 이른바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근무시간이 겹치는 날에는 참여하기가 어렵고, 늦게 근무가 끝나는 프로그램 참가자는 9시 20분에 도착해서 단 1분이라도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일산에 사시는 돌봄 여성도 참여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그래서 돌봄 여성들의 열과 성의가 드높다.
 
돌봄 여성들은 노동 근무조건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누군가의 신체적 정신적 부족과 결핍을 메워주거나 지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기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쏟아 주어야 한다. 말 그대로 돌봄이다. 특히 짬을 내기가 쉽지 않는 직업이라서, 진작 자신의 몸과 마음은 돌보지 못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진해서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은 이른바 헌신한다는 마음자리가 밑자락에 존재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특수한 직업이다.
 
성효숙 감독은 “돌봄 여성들의 삶이 고단하고, 문화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결과 보다는 서툰 과정을 초점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다양한 갈래의 문화 영역을 통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임을 성효숙 감독은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들도 “저희들이 어릴 적에만 경험해 보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들을 하기에 몸이 파김치가 되지만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여기에 이곳에 온다”고 이구동성이다.
 부산비엔날레 퍼포먼스참여
올해 약손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부산 비엔날레 관람뿐만 아니라 직접 행위 퍼포먼스에 참가한 경험이 올해 돌봄 여성들이 지닌 강한 추억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가오는 12월 7일 부평구청 7층 대강당에 올릴 가면극 공연을 위해, 그녀들은 약손의 음악담당 황승미 선생이 작사 작곡한 ‘돌봄의 노래’을 기타 반주에 맞춰 몸 가운데 목을 먼저 푼다. 그 사이에도 늦은 교대시간으로 도착하는 돌봄 여성이 동그랗게 모인 자리에 비집고 들어 와 노래를 부른다. ‘돌봄이 필요해’, “돌봄이 필요해”
 
그 다음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약손의 연극 담당 김해진 선생이 돌봄 여성분들의 몸 전체를 푸는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 하루 타인을 위해 애를 쓴 몸을 풀어 두는 간단한 몸풀기를 진행한다. 자세는 엉성하고, 제대로 몸이 나오지 않고, 몸 전체가 굳어져 있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다. 그래도 자신의 몸을 푸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마음이 고스란히 그네들의 입 속에서 묻어난다.
 
성효숙 감독은 옆 자리에서 본드기계를 들고 가면극에 사용할 빗자루 소품을 만든다고 손놀림이 부산스럽다. 만지고, 바르고, 붙이고 그 사이로 참여자들이 본격 연극 대본 연습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왁자지껄이다.
 
각자가 맡은 역할과 팀별로 맡은 모듬별로 동작이 이어진다. 대사 처리는 세월이 묻어나지만 서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일산에서 오는 이 프로그램의 청일점 한성영씨의 품바 몸짓은 말 그대로 독창적이고 색달랐다. 12월 7일 본 연극공연가 기대된다.

가면극 대본은 약손의 홍명진 소설가가 담당했다. 사이 사이에 참여자들이 직접 첨가하고 동작을 새롭게 꾸미는 과정을 통해서 돌봄 여성들의 어려운 근로조건과 아픈 마음 자리를 드러내는 대사와 몸짓이기에 연습을 하면서 돌봄 서비스 할 때 받는 마음의 상처를 조금은 해소된다고 심옥섭씨는 말한다.
 
며칠 남지 않은 연극공연인지라 참여자들은 긴장하는 편이지만, 성효숙 감독은 “있는 대로, 느낌이 대로, 있는 조건에서 하면 된다”고 말하며 격려의 추임새를 보내며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끝나는 시간 무렵에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다음 시간에 우리가 모두 이 참가자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가를 우선 확인한다.
 
성효숙 감독은 물어 본다. “‘유순식’, ‘조희남’, ‘곽정숙’, ‘김명순’, 신성아’, ‘한성영’, ‘심옥섭’, ‘김인자’, ‘신정희’ 선생들의 오는 일요일 오후 3시에 모일 수 있나요”.
 
“그날 김장하는 날인데, 조금 늦더라도 김장김치 가지고 갈께요”
“밥은 쌀 가지고 가서 같이 해먹죠”
“에구, 그날 난 근무다. 늦게까지 근무하고 늦더라도 올께”
성효숙 감독은 “일요일 만나는 장소는 여기가 아니다. 알죠. 자활센터”
 
다음 시간 일정을 잡는 것이 매우 힘들다. 다 함께 제 시간에 모여서 학예회를 준비하는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들어온 문을 다시 열고 나간다. 그녀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이 프로그램에 2년째 참여하고 있는 신성아 사회복지사는 “앞으로도 이 약손 프로그램이 지속됐으면 하고, 특히 함께 할 장소가 없어서 늘 메뚜기 신세데, 이것이 해결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함께 말을 건넸다.
 약손을 만드는 사람들, 김해진(연극), 성효숙(화가), 황승미(음악) <사진: 왼쪽부터>
시간은 벌써 9시 3분이 지나고 있다. 밤은 어둡고 기온은 떨어졌지만, ‘약손’에 오는 화요일은 마음과 몸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가면극에서 선보일 노래를 흥얼 응얼거리면서 뒤늦은 버스에 오른다.
 
성효숙 감독도 다소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어깨에 둘러 매고 거리로 나선다. 80년대 현장이 아니라, 2012년 현장으로.  ‘약손’이 필요한 현장으로.
 
“돌봄이 필요해, 돌봄이 필요해 우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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