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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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과 건강
  • 방예원
  • 승인 2012.11.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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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방예원 / 인천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보고 싶어 보는 게 아니야”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니야”,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한국 전체 산업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늘상 하는 말이다.

속마음과 달리 하고 싶은 표현은 속으로 삭이면서 과장된 웃음과 강요된 표준어 뉘앙스로 손님,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 마치 군대처럼 ‘다’ ‘나’ ‘까’ 훈련도 받는다. 괜히 손님 응대 잘못했다 민원이라고 생길 상황이 되면 머릿속에서는 이미 직장상사로부터 ‘잘못한 게 없어도 무조건 사과’하라는 식의 욕지거리 섞인 질타가 두렵다. 경위서 쓰는 게 두렵지는 않지만 잘못도 없이 잘릴까봐 억울하다. ‘누군가’가 아니고 우리들 대부분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고객 만족과 매출이 관련된다고 인식되는 만큼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마케팅 분야에서 고객만족(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감동을 강조하면서 나보다는 ‘고객 감정’을 우선시하는 서비스를 강요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노동자는 업무 지침에 따라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 원치 않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 받고, 때로는 내면 감정마저 통제 당하게 된다.

소위 고객서비스를 담당하는 판촉이나 영업사원뿐만 아니라 간호사, 항공기승무원, 민원상담실 직원, 슈퍼마켓·백화점·호텔·패스트푸드점·보험회사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고객 서비스를 주 업무로 하는 산업 근로자는 모두가 똑같은 ‘감정노동’이라는 직업적 유해요인에 노출돼 있다.

1983년 감정노동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소개한 혹쉬차일드(Hochschild, 1983)는 항공기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을 연구했다. 그 결과 감정노동이 약물남용, 알코올중독, 결근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감정노동에 관한 외국의 앞선 연구들은 감정노동이 소진(burnout)과 직무 불만족 등 부정적인 결과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문제를 유발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근무시간 동안 손님 응대에 실수(?)가 없게 하기 위해 계속 긴장된 상태로, 소위 교감신경이 흥분된 상태가 지속된다. 다시 말해 노동을 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고, 혈압은 높게 유지해야 하며,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해서 분비돼 몸을 데운다. 이런 스트레스 상태에서 진상(?) 손님이라도 만나거나, 적절히 해소할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억눌린 감정을 해결하지 못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윤을 향한 기업의 경영전략은 갈수록 강화되고 서비스직의 비율이 높아가고 감정노동 종사자의 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다. 기업의 수준에서는 내키지 않더라고 개인 업무시간과 양 등 노동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휴게시간 확보, 감정부조화 해소 프로그램, 교대제 개선도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노동자는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인격존중의 회사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직무스트레스 문제 해결에 대한 상급자나 동료의 상호 지지와 배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객에게도 떳떳한 대응을 주문해야 한다. 고객의 불쾌한 언행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조치, 폭행에 대한 적정한 제재조치·예방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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