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스님, 불국정토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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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스님, 불국정토를 꿈꾸다
  • 최향숙 시민기자
  • 승인 2013.05.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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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구 구양사 범패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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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많은 편이다. 그 크기로 치자면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 전등사, 용화선원 같은 곳은 크기도 웅장하지만 전국에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일년 삼백육십오일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불심으로 치면 사찰의 크고 작음이 무슨 의미가 있음이랴. 더구나 고유의 사찰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이든 문화적이든 나름대로 의미 하나쯤은 사찰마다 간직하고 있기에 그 경중을 거론할 것은 더더욱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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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1호선 제물포역에 내리면 걸어서 십 여분 거리에 구양사 · 범패박물관이 있다. 1986년 작은 서원으로 시작된 구양사는 양류관세음보살님의 유지를 받들어 중생을 구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한쪽에 약사여래불을 모셔놓은 촛불이 항상 켜져 있고 법당으로 들어서면 어느 절과는 다른 분위기에 혹자는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바로 박물관을 겸한 내부에서 풍기는 완전한 절 같지 않은, 그렇다고 완전한 박물관도 같지 않은 묘한 조합에 잠시잠깐 숨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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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속으로 들어간 범패박물관. 이곳은 여느 박물관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구석구석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한 귀하고 특별한 자료와 유물들로 구성된 내실 있는 박물관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나 관심 있는 방문자들은 처음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하나는 야트막한 동네 주택단지 내에 자리하고 있는 소박한 사찰의 크기에 놀라고, 두 번째는 좁은 공간 곳곳에 알차게 들어차 있는 귀한 유물과 사진들에 놀라게 된다. 크고 웅장해야만 박물관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범패박물관은 우리가 얼마나 겉치레에 치중하고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때문에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들어설 때 가졌던 미망이 둘러보는 동안 저절로 소멸됨을 일주문을 나설 때 비로소 느끼게 된다. 소박한 사찰에서 소박한 박물관을 오래토록 유지해온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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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해 능히 제천(諸天)을 기쁘게 할 만하다.'

  신라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은 범패를 이렇게 평했다. 불교의식에는 독경과 재를 지내는 재의식(齋儀式)이 있다. 이때 행해지는 불교의 독특한 노래를 범패라고 하는데(Beompae) 다른 말로 범음, 어산이라고도 한다. 범패를 들으면 신체가 피로해 지지 않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고, 음성이 흩어지지 않고, 제석천이 환희한다고 하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고 한다.  범패와 작법무(불교무용)는 곧, 불교의 춤과 노래를 의미하는데 음악, 미술, 무용을 포함, 연희적 성격까지 포함한 불교 의식의 총칭이라고 볼 수 있다. 범패가 목소리로 불전에 공양을 드리는 것이라면 작법무는 춤동작으로 공양을 드리는 행위다. 범패는 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이다. 작법무는 춤의 동작과 형식에 따라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타주춤으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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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법무 중 바라춤은 모든 번뇌를 없애고 도량을 청정하게 하며, 마음을 정화하려는 뜻에서 시연된다. 능화스님은 “바라춤은 불국정토를 지향한다.”면서 “바라가 모아졌다 펼쳐졌다 하는 춤사위는 부처님의 법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전하는 것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지식, 재물 등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를 다시 나누라는 뜻도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모든 의식을 직접 지켜본 사람들은 잠시잠깐 선경에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니 바라를 들고 훨훨 나는 춤사위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간혹 스님이 춤을 추나? 라고 의아해 하기도 하는데 능화스님은 춤은 불교에서는 떼어놓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외롭게 30여 년을 노래(범패)와 춤(작법무)을 알리는데 정성을 쏟은 만큼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매주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차츰 성과가 나오는 것 아니냐며 합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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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의 무형문화재인 범패와작법무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는 능화스님은 21세에 기술고시 준비를 위해 절에 들어갔다가 강원도 월정사에서 출가, 올해로 34년째 수행정진하고 있다. 30여 년이 넘게 바라춤을 전승하고 있는 능화스님은 스승인 무염스님의 가르침으로 바라춤의 길로 들어섰다. 무염스님은 1970년대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여로>에서 시아버지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로, 어릴 적 불가에 귀의했으나 속세로 다시 내려와 재출가하기 전까지 배우의 길을 걸었다.

  노년에 재출가한 무염스님은 자신의 재능을 범패와 작법무 중 바라춤으로 승화시키고 이를 유일한 제자인 능화스님에게 전수했다. 바라춤을 전수받은 능화스님은 지역에서 포교에만 힘쓸까도 고민했지만 스승에게서 배운 바라춤을 알리기로 결심, 지금까지 바라춤을 전수 보급하고 있다. 능화스님에게서 바라춤을 배워 수료한 이수자는 30여 명, 전수생만도 400여 명이 넘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라춤을 배우는 학교가 인천에 있는데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다. 2006년에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참가하여 2등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인 금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팔만대장경이 완성 된 지 꼭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팔만대장경은 인천의 강화 선원사에서 완성되어 조선 태조7년 서울 지천사를 거쳐 다시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때 대장경이 옮겨지는 과정에 처음으로 불교의식으로 인천에서 범패와 작법무가 행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난 2002년 역사적 의미와 예술성을 인천시로 부터 인정받아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10-가호 범패와 작법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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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서는 매년 6월 6일이면 수봉산 정상의 현충탑 광장에서 나라를 위해 순직한 순국선열을 위로하는 현충재를 올린다. 현충재란 장엄한 불교 의식의 하나인 영산재를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 작품화 한 것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10년째 구양사 주지인 능화스님과 회원들이 함께 봉행해 오고 있다.  이날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현충탑 광장에서 다양한 불교의식의 음악과 춤사위를 볼 수 있다. 행사에는 여는 의식, 받드는 의식,  펼치는 의식, 회향 의식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여는 의식에는 범패예능보유자인 능화스님의 바라춤과 불교 4법 악기인 범종, 목어, 운판, 법고 등이 연주되고 나비춤, 법고춤, 전통무용, 가야금 산조 등이 마련되어 있다.

  현충재를 올리게 된 연유도 스님의 측은지심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운명처럼 스님 눈에 띄었던 건 우연이 아닐 터, 2002년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고 수봉문화회관에서 제자들과 공부를 하던 중 마침 현충일에 비가 왔다고 한다. 수업을 미루고 수봉산의 현충탑을 참배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놓고 간 하얀 국화가 처량하게 비에 젖고 있는 것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처연했다고 한다.  그 정경이 하도 아파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그때부터 사회단체보조금을 신청하고 자부담을 모아 나라를 위해 스러져 간 선열들의 넋을 달래기를 10년째 하게 된 것이다. 현충재는 유교식으로 제사를 올리는 제(祭)가 아닌 불교식 의식으로 공양을 차별 없이 올린다는 재(齋)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현충재를 올리게 된 이면에는 영산재라는 불교적 의식을 설명해야 한다. 영산재란 기원전 6세기경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당시의 찬탄의식을 재현한 것으로 소리와 가무로 공양을 했던 영산재는 범패와 작법무가 필수다. 그러나 영산재라고 해서 꼭 망자만을 봉행하는 건 아니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국운융창과 국난 극복을 위해서도 봉행되었다고 한다. 이 재는 범패의 봉창과 불교무용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간주할 수 있다.  능화스님은 작은 바람과 조금 큰 바람이 있다고 한다. 전국 어디를 둘러보아도 현충재를 민의에 의해 지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스님은 타 단체나 지방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시작하고 있듯이 현충재를 포함한 범패 박물관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불자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한다. 또한 지난 10여 년의 현충재 자료를 모아 올 연말에는 사진집으로 발간한다는 계획이다. 제목도 정해 놓았다.『범패향기』이다.

  큰 바람으로는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공부를 통해 지속된다고 생각하는 바, 지금 절 부지에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공간과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 박물관이 함께 서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 아니겠느냐고 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과 어지러운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것은 ‘효’만큼 든든한 지렛대는 없다고 한다. 능화스님은 외롭고 힘든 노인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를, 아이들에게는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범절을 배울 수 있는 체험 장으로, 매일같이 박물관을 보면서 자라나는 새싹들의 올바른 문화재에 대한 인식은 딱 맞는 궁합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업메세나와 매치가 잘되면 더욱 좋은 시설로 거듭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구양사는 총 210여 평 정도의 부지에 1층은 전시실과 강의실, 2층은 체험실을 비롯한 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1, 2층을 통틀어 범패와 작법무에 사용되는 악기 100여 점과 의상 50여 점, 장엄유물 150여 점, 전적 350여 점, 사진자료 250여 점 등 총 900여 점과 범패자료 4만여 점이 전시 및 소장되어 있다. 그중엔 인도의 소 바라, 중국의 도자 무희 상, 부탄의 동제바라, 인도의 봉황요령, 일본의 바라, 티베트의 용고 및 경전불화 등의 음악과 무용 의식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 전시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관람자가 직접 연주도 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민화, 서예, 다도 등의 생활예절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은 지역 박물관 발전을 위해 유물 및 자료를 기증하고 독지가들의 관심과 참여만이 사라져 가는 자료와 유물들을 지켜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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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단한 작업을 스님 혼자 힘으로 일궈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래전, 황학동엘 갔는데 예전 스님들이 쓰시던 법구들이 다른 물건들과 섞여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 순간, ‘잘못하다간 불교의 소중한 유물들이 사라지고 없겠구나’ 생각에 골동품 가게 등에서 온종일 다리품을 팔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사재를 털어 범패관련 애장품들을 모으다 보니 어느덧 수 십 수 백 점의 유물들이 모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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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신문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스님이 들려준 개미와 개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명부세계의 고통을 마치고 인간 세상에 오는데 처음에 개미로 태어나 자기 몸의 6배의 무게를 싣고 살아가는데 몇 번 생을 고쳐 살면서 커지다가 전생의 업들을 다 소멸하면 마지막 축생의 단계인 개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직전의 단계인 셈이다. 기자가 개가 인간 전단계라는 말씀에 미혹을 떨쳐내지 못할 때 마지막 일갈로 그 의심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개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정신을 놓으면 개가 되는 것이고 정신을 차리면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선과 악도 종이 한 장 차이, 천사였다가도 잠깐 내 마음을 놓는 순간 악마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 천둥처럼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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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구양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다시 오른편 마당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그대로 직진하여 실내로 들어가 버리면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놓치게 된다.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大雄殿’ 간판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하늘, 땅, 허공 모두가 대웅전인데 어디를 가두고 어디를 허한다는 것인가 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대웅전이다. 하지만 2층에 자리한 ‘진짜’ 대웅전이 있음을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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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화 김종형 스님
 
인천시무형문화재 10-가호 범패와작법무 바라춤 예능보유자동국대학교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강사사)한국박물관협회 범패박물관장. 인천ㆍ제주 구양사 주지
사회복지사 1급, 박물관·미술관 학예사 3급 자격 취득.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서울ㆍ일산 겸임교수
명인명무전 출연,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개막 초청공연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 오스트리아, 러시아 국립극장, 일본 국립극장
벨기에, 부탄, 필리핀, 베트남, 미국 LACMA박물관 초청공연2010 종교인 대상수상. 인천광역시 문화상 수상.
『스님이 춤은 왜 추나』,『현충재』,『상주권공』 등 출간(032) 884 - 8904 (구양사),  010-8824-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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