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얼을 찾아 일본 대마도에 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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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얼을 찾아 일본 대마도에 갔다(2)
  • 권혁진 시민기자
  • 승인 2015.04.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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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관광객으로 늘 붐비는 섬

대마도 여행 2일차의 날이다. 하대마도에서 상대마도로 올라가며 자연환경과 한국인의 흔적을 찾았다. 오후에는 히타카츠항에서 부산으로 돌아올 일정으로 실버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침 7시 기상과 동시에 아침 식사가 이어졌다. 작은 그릇의 공깃밥, 깍두기 두 개, 두부 한 조각, 생선토막 한 개, 짐 세 조각이다. 더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다. 모두 밥상 위에 남는 음식 쓰레기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와의 식사 문화는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상 대마도로 출발하였다. 1차선 도로에 꼬불꼬불 이어진 도로를 따라 산기슭을 달리며 연속적으로 굴을 통과한다. 80%가 산인 대마도는 원시림과 대나무, 노송나무가 도로변을 따라 조림되어 있다.
 
상·하 대마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 만민 교에서 잠시 하차하여 다리를 도보로 건넜다. 일본 해군의 군함이 지나가도록 만든 운하로 비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다음은 와타즈미 신사를 같다. 바다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놓인 다섯 개의 도리이냐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신사 경내를 관람하며 고목의 알 수 없는 나무들과 노송나무, 원시림 등 나무들로 빽빽한 곳을 잠시 산책하였다.
 
다음은 산 정상에 있는 에보시다케 전망대로 갔다. 울창한 원시림과 겹겹이 떠 있는 섬들, 아소 만의 전경은 대마도를 찾는 관광객이 모두 찾는 곳이다. 내려오는 계단 옆에 산돼지들이 파 놓은 곳이 많았다. 사방이 탁 트인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다음은 대마도 북쪽에 있는 한국 전망대와 조난 위령비를 찾았다. 부산과의 49.5km 떨어진 곳이다. 팔각정 전망대에는 조선 통신사가 대마도를 지나 일본으로 향하던 역사 이야기가 소개되었고 그 옆에 조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안내자 황 씨는 “부산항을 출발한 108명의 역 관사 일행이 탄 배가 이곳 앞바다에서 기상악화로 좌초되어 전원이 사망하였다. 역 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난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언덕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했다.

이러한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점심 겸 부산으로 가기 위해 히타카츠 항으로 이동하였다. 점심은 일본 가락국수이다. 간단한 식단은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해 인색할 정도였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인근 온천장에서 온천을 하고 나니 몸이 개운하고 좋았다. 온천장에서 나와 인근의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갔다. 모래도 곱고 바닷물도 깨끗하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히타카츠 면세점을 갔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면세점이다. 생활필수품과 농수산물을 판매하고 있어 관광객들은 기념으로 샀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오션풀라워 호에 승선하였다. 부산까지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부산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경이 되었다. 부산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는 밤 8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다시 경인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니 12시가 넘었다.
 
인곡우회 김천식(70·남) 씨는 “여행은 즐거우면서도 피로하다.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외국의 풍경과 문화에 접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일본이 미우면서도 한번 가보고 싶은 대마도였다. 이곳의 잘 보존된 천혜의 자연환경과 우거진 원시림이 참 부러웠다” 고 했다.
 
대미도 곳곳에 한국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준 열사는 “나라가 크다는 것은 땅이 커서가 아니라, 위대한 인물이 많으면 큰 나라이다”고 했다. 우리의 선조들도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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