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재미, 인천을 세계에 각인시킨 창작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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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재미, 인천을 세계에 각인시킨 창작 합창
  • 송현민
  • 승인 2023.06.19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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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 40년을 듣는다]
(8) 한국합창의 대부 윤학원 - 합창문화의 새 역사를 이끌다(하)
인천문화재단이 오는 2024년까지 인천문화예술 40년사(1981~2021)를 편찬한다. 이에 인천in은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인천문화 40년을 이야기하고 증언해줄 인물 12인을 선정, 구술 작업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2023년 7월까지 차례로 연재한다. 여덟번째 순서는 윤학원 지휘자(전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로 송현민 『월간 객석』 편집장이 만났다. 하편을 싣는다.

 

지휘자 윤학원. 송현민 『월간 객석』 편집장이 5월 1일 서울 강서구 코러스센터에서 만났다.

 

세계가 인정한, 인천시립합창단

 

-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당시 많은 수의 창작합창곡을 위촉‧초연하는가 하면, 해외 초청 공연도 많았습니다.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ACDA) 초청 공연입니다. ACDA의 50주년 기념행사였는데요. 40개의 미국 합창단과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4개 합창단을 뽑아서 초청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캐나다 영국, 그리고 인천시립합창단이 뽑힌 것이었습니다.

- 어떻게 선발될 수 있었나요?

2006년 ACDA 회장인 맥코이 교수가 대구시립합창단에 객원 지휘자로 왔다가 당시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인천시립합창단 제100회 기념공연을 보았습니다. 창작 오라토리오 뮤지컬 ‘모세’였는데요. 이를 보고 감동해서 초청한 것이었습니다.

 

- 미국의 합창계를 대표하는 큰 행사였을 텐데, 어떤 곡을 연주했습니까?

초청이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계획을 짰습니다. ‘메나리’ ‘알렐루야’ ‘다윗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를 선곡했죠. ‘메나리’는 한국어 가사지만 그 뜻이 분위기를 타고 잘 전달되기에 선곡했고, 인간의 웃음을 다양한 노래로 표현한 ‘팔소성’, 긴장과 이완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알렐루야’, 미국 합창음악의 천재 작곡가인 에릭 휘태커(1970~)의 고난이도 곡 ‘다윗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를 선정해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 그중 우효원(1974~)이 작곡한 ‘팔소성’은 독특한 곡이고, 오늘날에도 인천시립합창단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적이고, 세계화할 수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을 위해 고민하던 중 웃음소리로 음악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위촉한 곡이었습니다. 인간의 웃음소리는 세계 사람이 공통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으로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우효원 작곡가에게 8가지 웃음소리를 이용해 ‘팔소성’(八笑聲)을 만들었습니다. 여덟 가지 웃음이라는 뜻인데, 살짝 수줍어하는 교소(巧笑), 시원하고 유쾌한 웃음인 쾌소(快笑), 요염한 여자의 웃음인 염소(艶笑) 등입니다.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협회 컨벤션에서 인천시립합창단의 ‘팔소성’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협회 컨벤션에서 인천시립합창단의 ‘팔소성’

 

- ‘메나리’도 한국의 민요를 응용한 곡으로, 독특한 연출로 선보였다고요.

‘공간 음악’이라 이름 붙인 곡입니다. 예전에 벨기에 합창단이 관중석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만든 곡입니다. 합창단을 세 군데로 나누어 한 팀은 무대에, 또 한 팀은 객석 왼쪽에, 나머지 한 팀은 객석 오른쪽에 배치했습니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지휘에 따라 노래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더군요. 미국 관객들이 이런 형태의 연주는 처음 접한 것 같았습니다. 세 군데에서 나오던 소리가 마침내 한군데로 모이고, 서로 주고받으며 앙상블이 되고 특이한 한국적 화음과 울림을 이루었습니다. 객석에서 노래하던 단원들이 무대를 향해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올라왔는데요. 모두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곡이 끝나자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첫 곡부터 기립박수를 받았지요.

 

성공적인 연주였다.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 초청 공연 이후 인천시립합창단과 윤학원의 명성은 국내외로 높아져 갔다. 그로 인해 2010년은 윤학원과 인천시립합창단에게 국내외로 바쁜 해였다.

 

 

한국합창을 서양으로 역수출하다

 

- 2009년 미국에서 명성을 얻은 후 2010년은 굉장히 바쁜 해였습니다.

ACDA의 2009년 초청 공연 이후 미국에서는 한국 합창을 2009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당시 연주는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10년 2월 25일부터 3월 6일까지 ACDA로부터 또 한 번의 초청을 받아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미국의 대학 교수들이 한국의 합창 견학을 하겠다고 방문하고, 대학 합창단들도 합창 클리닉을 받겠다고 한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ACDA에서 발간하는 ‘코랄 저널’(Choral Journal)에 ‘어메이징한 인천시립합창단을 만나러 한국에 오시오’라는 광고를 싣기도 했었죠.

- 지휘자와 인천시립합창단의 음악적 노하우를 전수하고 공유한 시간이었을 텐데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대부분 자비를 들여 학습 차원에서 방한한 합창단들이었습니다. 2010년 1월에 14명의 지휘자가 학생들과 함께 내한하여 돌아가더니 2011년에는 컨커디어대학 합창단이 70명의 단원을 이끌고 한국 합창을 배우러 왔습니다. 이어 워싱턴앤리 대학 합창단과 아이오와 대학 합창단도 합창 클리닉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로 된 합창곡을 가르쳤습니다. 나운영 연세대 교수가 작곡한 ‘시편 23편’, 인천시립합창단이 불렀던 ‘메나리’ ‘아리랑’ 등을 가르쳤는데, 비교적 정확한 발음과 암보로 연주했습니다.

 

합창은 서양음악이고, 여전히 클래식 음악의 한 부류로 분류된다. 한국이 이러한 서양음악을 받아들인 역사는 한 세기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일제강점기부터 합창문화는 종교와 함께, 혹은 근대화의 문물들과 함께 수용되었다. 그러던 중 서양의 가사가 놓인 자리에 한국어를 얹었고, 때에 따라 한국어의 느낌과 흐름에 맞는 한국적 합창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노래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과 한국합창단이 잘 부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학원이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 초청 공연 이후 보여준 행보는 한국합창을 서양음악 종주국에 ‘역수출’한 것이었다.

 

- 미국 현지에서의 인기와 관심은 물론 이로부터 이어진 미국 합창 관계자들의 한국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인천시립합창단과 만나고 교육 받기 위해 내한한 컨커디어대학 합창단은 영국 BBC 및 각종 언론과 방송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미국 최고의 대학 합창단입니다. 또한 20년이 넘도록 지휘를 맡고 있던 르네 클라우젠(Rene Clausen)은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2009년 ACDA에서 그를 만났는데 ”이곳에 참석한 합창지휘자들이 한국의 윤학원 지휘자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라는 말을 그에게 들었을 때 과거 로버트 쇼의 세미나를 듣기 위해 미국으로 간 일이 생각났습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세계적인 지휘자 로버트 쇼의 세미나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저 역시 5년 동안이나 매해 여름이면 로버트 쇼의 세미나를 듣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합창대학의 여름학교에 참여했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마치 새로운 음악 세상이 열린 듯 한껏 들뜨게 되었고, 돌아와서는 합숙 훈련을 하며 단원들에게 전수하느라 흥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한국의 합창을 인천시립합창단으로부터 배우고 전수 받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미국 로웰대대학원 재학 시절 에드워드 길데이 교수와
미국 로웰대대학원 재학 시절 에드워드 길데이 교수와
세계적인 지휘자 르네 클라우젠와 함께 한 인천시립합창단

 

- 2010년에도 여러 해외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2010년 10월 프랑스 노르망디 생로(Sanint-Lo)에서 열린 합창 마켓 폴리폴리아(Polyfollia)에 인천시립합창단을 초청한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폴리폴리아는 세계의 공연 기획자들을 위한 장으로, 400~500명의 세계 합창 기획자들을 모아 놓고 음악을 파는, 말하자면 합창박람회 같은 것이에요. 여기에 인천시립합창단이 초청된 것만도 대단한 이슈였는데, 30명 단원의 경비까지 모두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메나리’와 ‘팔소성’을 선보였는데요. 세계 각국의 공연 기획자들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 해외 공연을 준비하고 다니면서 인천시립합창단이 그들로부터 인정 받은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한국적인 것, 우리만의 독창적인 레퍼토리가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합창이 세계 최고가 되려면 ‘정체성’과 ‘독자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한국화’ ‘세계화’ ‘현대화’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적인 것만을 고집해선 안 되고요. 현대적인 트렌드를 따르지 못하면 우리 음악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이고 현대적인 음악, 이 세 가지를 담고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합창의 전통에 트렌드를 더하며 변화를 시도

 

‘모세’는 인천시립합창단의 국제적인 행보의 물꼬를 튼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한국에 들른 맥코이 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ACDA) 회장이 인천시립합창단의 이 공연을 보면서 실크로드의 길이 열린 것이었다.

‘모세’는 ‘뮤지컬 오라토리오’라는 새로운 장르명이 붙은 작품이었다. 오라토리오는 종교음악의 한 형식인 합창 양식이다. 그런데 ‘모세’의 노래들을 부르는 합창단원들은 뮤지컬 배우처럼 무대를 누볐다. 즉 과거의 전통적 형식(오라토리오)에 오늘날의 트렌드(뮤지컬)를 가미한 것이었다. 이처럼 윤학원은 ‘곡’은 물론, 음악을 표현하는 ‘형식’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세종문화회관(3,500석)을 메운 인천시립합창단 히트작 ‘모세’
세종문화회관(3,022석)을 메운 인천시립합창단 히트작 ‘모세’

 

- 2006년에 첫 선을 보인 ‘모세’는 어떻게 태어났나요?

“‘모세’는 ‘모세의 탄생’부터 ‘홍해의 기적’까지의 이야기를 합창으로 풀어낸 웅장하고 장엄한 작품입니다. 2003년 우효원 작곡가가 인천시립합창단만을 위한 대규모 합창곡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외국 성가 중 ‘모세’라는 동명의 곡들이 있는데요, 제가 우효원 작곡가에게 인천시립합창단도 이런 걸 한번 만들어 보자고 했더니 멋있고 웅장한 작품을 작곡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가라 모세’라는 곡이었습니다. 이후 인천시립합창단이 발표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 세계합창제, 미국 카네기홀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가라 모세’의 호응이 예상보다 좋자 인천시립합창단은 매년 큰 주제와 규모의 성가곡을 하나씩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 인천시립합창단 제100회 정기연주회를 구상하던 중 그동안 발표한 곡을 모아서 뮤지컬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세의 출생’ ‘10가지 재앙’ ‘홍해’ ‘미리암의 찬가’ 등으로 전체 스토리를 엮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곡들을 우효원 작곡가가 고쳐 합창 뮤지컬 오라토리오 ‘모세’가 완성되었습니다.

-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주제와 소재인데요. 주위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종교극에 대한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시립합창단은 규정상 종교음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처음에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굴하지 않고 밀어붙였고, 다행히 인천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도시여서 기독교인이 많고 교회도 많은 편이라 다른 시보다 저항이 덜 했습니다.”

 

- 당시 인천시립합창단은 인천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레퍼토리를 서울에서도 선보이며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모세’ 역시 2011년에 서울에서도 선보였습니다.

“인천에서만 공연하는 것이 아쉬웠는데, 마침 서울 세종문화회관이 날짜가 빈다니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 예약했습니다. 그러나 공연이 다가올수록 부담감도 컸습니다. 종교음악극이라는 성격상 관객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합창에도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기에 뮤지컬 전문 연출가도 영입하는 등 여러 예술가들과 합작하고 도움을 받으며 전문적으로 준비했습니다.”

- ‘모세’ 공연은 무대 위에서 반듯한 대형을 갖추고, 늘 고정된 단상에서 노래하던 단원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겠습니다.

“음악은 모세를 포함한 모든 인물의 대화와 서사를 드라마틱한 합창과 다양한 형태의 솔로 및 앙상블로 표현했습니다. 그동안 코러스 역할을 하던 합창음악을 극의 중심 음악으로 옮겨 놓으니 더욱 극적이면서 웅장해졌지요.”

- 공연 후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공연에 임박해서 티켓이 거의 매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게 티켓을 구할 수 없냐는 요청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죠. 생각해보면 당시 ‘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2011년 KBS 방영)의 인기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에 출연한 것이 힘이 된데다, 청춘합창단에서 받은 감동을 ‘모세’에서 느끼려는 사람들의 관심이 매진이라는 기적을 낳은 것이었습니다. 공연 당일 세종문화회관의 3,022석이 대부분 채워졌습니다.”

 

 

기획력과 실행력이라는 중요 요소

 

- 생각해보면 윤학원 지휘자와 함께 한 인천시립합창단은 새로운 시도를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곡도 새로운 곡이 좋지만, 연주회 제목 역시 진부하고 낡은 것을 싫어합니다. 가령 인천시립합창단 제00회 정기연주회 같은 따분한 제목은 더더욱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연주회 제목을 보고 ‘아, 이번 주제는 무엇이겠구나’ 하고 연상하고 호기심을 가질 만한 제목을 좋아합니다.

 

2011년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은 인천시립합창단이 대중에게 더욱 알려지는 분수령이 되었다. 사회적 소통과 통합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윤학원이 보여준 화음을 이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그 무엇이었다. 다 같이 모여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 윤학원과 인천시립합창단을 통해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인천시립합창단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급상승했다.

 

KBS ‘남자의 자격’에서 음악인 김태원과 함께
KBS ‘남자의 자격’에서 음악인 김태원과 함께

 

김태원과 함께 한 인천시립합창단 공연
김태원과 함께 한 인천시립합창단 공연

 

- 인천시립합창단은 새로운 창작곡을 생산하는 음악 공장이며,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보여주는 전진 기지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구상하는 ‘기획’이 상당히 중요하고, 이러한 기획은 예술감독의 전적인 업무인데요, 공연의 설계도를 어떻게 그리나요?

주제를 선정하면 주제에 맞는 곡을 선정해서 누구에게 작곡을 의뢰하고 어떤 방식으로 연주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서 어떤 곡으로 마무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합창 공연은 대부분 전반부(1부)와 후반부(2부)로 나뉘는데, 각 음악과 분위기를 마구 섞어 놓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구성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곡목 구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저는 주로 4~5개의 섹션을 만들고, 한 섹션에 4곡씩 밝은 곡과 어두운 곡 등으로 분위기를 다르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들을 때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한 것이었죠. 이때 연주회가 봄이냐 여름이냐에 따라 달라지고, 또 어떤 달인지, 당시 분위기나 유행, 청중의 관심사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또 악기는 어떤 것을 쓸지, 무반주로 할지 등을 참작합니다. 안무를 할 경우 안무 넣는 순서도 고민하는데, 저는 주로 안무를 후반에 넣는 편이었습니다. 전반부는 아카데믹하면서 새로움을 보여 주는 곡으로 하고 후반부는 감동과 재미를 주려고 했죠.

- 공연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음악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야 하는 예술이라는 점이죠. 그래서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1부는 예술감독과 인천시립합창단이 예술가로서의 고집과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으로, 2부는 관객들과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구성하곤 했습니다. 가곡이나 민요를 재미있게 편곡하거나, 재미있는 가요를 편곡해서 안무까지 곁들여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이었죠. 이렇게 새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하면 관객은 다음 연주회를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곤 했습니다.

 

합창지휘자 부자(아들 윤의중)가 함께 한 ‘합창 배틀’ 공연
합창지휘자 부자(아들 윤의중)가 함께 한 ‘합창 배틀’ 공연
노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아시아 합창지휘자 세미나에서
노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아시아 합창지휘자 세미나에서

 

 

역사와 세계에 ‘인천’을 각인시킨 합창단

 

- 인천시립합창단은 연주뿐만 아니라 전임작곡가 제도를 도입하여 수많은 합창 창작곡들을 생산하기도 했고, 이러한 제도는 훗날 다른 시립합창단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합창단이 연주만 일삼는 예술단이 아니라 한국합창을 생산하는 역할을 겸하게 되었거든요.

나는 한국의 합창음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작곡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에서 작곡과를 나온 사람들은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실력은 뛰어나도 작곡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책이 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합창음악은 대학에서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작곡가를 육성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젊은 작곡가들을 통해 젊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리듬과 화성을 가지고 새로운 곡을 만드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 그런 점에서 인천시립합창단 재직 시절에 함께 호흡을 맞춘 우효원 작곡가와의 인연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한 인연이었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내가 지휘를 맡고 있던 영락교회 시온성가대의 대원이었는데, 4년이 지나도록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가대 사보를 통해 조선일보 신인음악회에 출연하는 작곡 학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인 작곡가 발굴에 관심이 많던 저는 그녀를 만났고, 대학 졸업반이던 그녀는 3학년 때 지은 곡이라며 작품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알렐루야’의 네 음절을 가지고 장난스럽게 만든 곡이었는데요. 음악적으로는 미숙했지만, 아이디어가 신선해서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이끌던 서울레이디스싱어즈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자 캐럴 편곡을 의뢰했습니다. 그녀도 열심이었고, 저도 수정을 거듭하며 곡이 모양새를 갖춰 나갔는데요. 무대에서 노래가 끝나자 저도 놀랄 만큼 청중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 결과 우효원 작곡가를 서울레이디스싱어즈의 전임 작곡가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합창단에는 전임 작곡가는 물론 이와 비슷한 제도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활동과 작품이 쌓여 갈수록 우효원 작곡가는 일취월장하여 나중에는 방향 제시만 하면 좋은 곡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 인천시립합창단의 전임 작곡가였던 오종찬 씨가 이민을 가면서 공개 채용을 진행했고, 우효원이 지원하면서 인천시립합창단과도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인천시립합창단만의 또 다른 대표작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정선이 작곡한 ‘인천 미사’도 현대 합창사에서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연주하러 갔다가 현지 합창단이 이 작품의 일부인 ‘글로리아’를 노래해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움과 실험을 추구한 인천시립합창단
새로움과 실험을 추구한 인천시립합창단

 

인천시립합창단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합창단 연혁’ 중 중요한 공연과 작품은 윤학원 시절에 나온 것들이다. 그는 인천시립합창단의 중요한 연혁 대부분을 만든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2009년 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ACDA) 초청 공연을 비롯하여, 2010년 프랑스 세계합창박람회, 2014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합창연합회(IFCM) 등의 초청된 이력은 그가 예술감독으로 재직할 때 이룬 쾌거이자 인천시립합창단의 대표적인 연혁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멘토 합창단으로 소개되어 합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인천시립합창단과 함께 이룬 것이었다. 윤학원은 2014년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을 은퇴했다. 그리고 그가 예술감독으로 인천시립합창단을 이끈 시간(1995~2014)은 인천문화 40년(1981~2021)은 물론 한국합창계의 중요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합창계의 역사로 기억될 윤학원
한국합창계의 역사로 기억될 윤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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