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탈춤 전수·교육에 쏟은 힘... 창작극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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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탈춤 전수·교육에 쏟은 힘... 창작극으로 거듭나다
  • 윤중강
  • 승인 2023.08.18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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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 40년을 듣는다]
(10) 차부회 은율탈춤보유자 - 탈춤의 명가를 이루다(하)
- 윤중강 국악평론가 대담·집필
인천문화재단이 오는 2024년까지 인천문화예술 40년사(1981~2021)를 편찬한다. 이에 인천in은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인천문화 40년을 이야기하고 증언해줄 인물 12인을 선정, 구술 작업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차례로 연재한다. 열번째 순서는 차부회 전통예술인(은율탈춤보유자)이다. 윤중강 국악평론가 만났다. 하편을 싣는다.

 

차부회 은율탈춤보유자(사진 = 유광식)

 

당시 그의 삶의 거의 전부는 ‘은율탈춤’이었다. 1991년 5월, 국가무형문화재 은율탈춤 전수교육보조자로 인정받은 날은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가 없다. 차 총무는 이제 차 국장이 되었다. 직함이 달라진 것처럼 대우는 올라갔지만,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탈춤 그리고 은율탈춤의 위상을 올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해서지방의 탈춤 보존회가 모두 서울에 근거를 하고 있음에 반해서, 은율탈춤은 인천에 근거를 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그것이 자부심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남들보다도 더욱 노력을 해야만 했다. 1997년 10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은율탈춤보존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시절이 그런 세월이었다. 그래도 참 기쁜 게 있다. 아내도 탈춤을 통해서 만났다. 아들과 딸도  탈춤에 재능과 함께 열의가 대단했다.

1980년대 공연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그러나 그 때를 기억하면서, 차부회의 얼굴에는 순수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버스 대절비를 아끼기 위해서, 단원들이 모두 짐을 나눠서 들고 서울공연을 갔다. 그래도 단원 사이에 불만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단원간의 정이 돈독했던 시절이었다. 서울에서 공연을 끝나고 내려와서, 동인천 오성극장 근처 '장항식당'에서 칼국수 한 그릇씩 먹는데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다. 어쩌다 갈비탕을 먹게 되는 날이면, 단원들은 더욱 더 신명나게 춤을 췄다.

 

은율탈춤 옛날 의상 전시(은율탈춤 전수관)(사진 = 유광식)
은율탈춤 전수관에 전시된 옛날 의상(사진 = 유광식)

 

은율탈춤은 황해도 은율지방에 전승되어온 탈춤으로,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탈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분이 장용수(莊龍秀)이고, 차부회는 그를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따랐다. 이미 어머니는 해서탈춤에서 미얄할미로 유명한데, 차부회는 탈춤에서 노승을 가장 잘 살리는 탈꾼이 되고 싶었다. 그러하기에 실제 그는 특히 노승 역으로 지금까지도 인정을 받고 있다.

시대를 풍자하는 은율탈춤 중 제5 과장(연극의 막과 같은 개념) 노승춤은 어떤 과장인가?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말뚝이가 새맥시를 데리고 나와 술취한 노승을 유혹하면서 희롱하고 최괄이가 나타나 노승을 내쫓고 새맥시와 어울려 춤추는 풍자마당이다. 노승은 보통 무언으로 몸짓과 춤으로 소무와 어울리며 파계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탈춤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국화주를 취하게 마시고 등장하여 중타령과 진언을 소리내어 부른다. 노승 스스로가 파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5년 5월 15일, 중앙일보 기사에 은율탈춤보존회 사무국장으로 인터뷰한 기사가 눈에 띈다. 은율탈춤 재건을 짊어지게 된, 당시 서른아홉의 차부회에 관한 인터뷰다.

 

‘“새롭게 출발하려 합니다. 어깨가 무겁지만 은율탈춤의 맥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중략) 다른 탈춤보다 훨씬 깨끗하고 순수하면서도 활발하기 그지없는 점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그 후 은율탈춤 계승발전에 헌신하게 됐고, 지난해엔 보존회 사무국장이 됐다. 그러던 지난 2월, 은율탈춤 보유자인 장용수(莊龍秀)옹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보존회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워낙 장옹의 비중이 막중했던 터라 그 빈자리가 너무도 커보였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차씨를 중심으로 30여명의 회원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공연만이 살길'이란 생각에 매주 3회 맹연습을 실시, 드디어 14일 오후 3시 수봉공원 야외공연장에 재기 공연을 올렸다. (하략)’

 

은율탈춤의 대들보와 같은 존재였던 장용수가 타계한 이후, 차부회는 더욱 더 노력했다. 차부회는 당시 숙원사업이던 전통민속놀이마당 건립도 추진, 완공에 이른다. 그리하여 전국의 대표적 탈춤이 한데 모이는 '전국탈놀이한마당'을 인천에서 개최했다. 이를 계기로 은율탈춤 제2의 도약의 시기를 맞게 된다.

2014년 7월, 차부회는 국가무형문화재 은율탈춤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어머니 양소운에 이어서, 2대째 집안에서 인간문화재가 탄생되었다. 어머니와 같이 탈춤 종목으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된 것이었다.

 

1983년 정기공연 팜플렛
1983년 정기공연 팜플렛

 

12개의 탈춤을 모두 섭렵하고자 했던 청년 차부회

원래 차부회는 은율탈춤의 전수생이고 되고, 이수자가 되어서, 이 종목만을 전승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차부회는 꿈은 현존하는 탈춤 12개 종목을 모두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걸 통해서 자신만의 탈춤을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와 관련된 탈춤 종목에만 묶이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러 탈춤의 전수자가 된다는 건, 예나 이제나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차부회는 특정종목의 탈춤 이수자이지만, 여러 탈춤에 대해서도 두루 애정을 갖고 더 나아가서 전통예술 자체에 대한 기획자적인 애정을 갖고자 힘썼다. 그래서 여러 기획과 여러 연출을 할 수 있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의 ‘전국탈놀이한마당’은 차부회 총연출이었다.

차부회가 그간 한 일은 참 많고 많았다. 2006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은율탈춤보존회 부이사장 맡았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무형문화재 공연단체 연합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어머니 양소운이 아들 차부회에 대한 칭찬에 매우 인색했다지만, 실제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막내아들이 참 대견할 때가 많고 많았을 것 같다. 가장 아들이 특히 자랑스러울 땐 언제였을까?

2006년엔 ‘이북5도 전통민속예술제’ 총연출을 맡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양소운은 1960년대 중반부터 인천을 중심으로 이북 5도 실향민들의 기예가 소멸되지 않고, 널리 알려지길 희망했고, 그러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는데, 이런 이북 5도의 무형문화가 함께 뭉쳐서 공연을 하는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웠을까? 

차부회가 전통공연예술의 기획자와 연출자로서의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차부회는 무형문화재의 기록화에 일찍이 관심이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2007년 인천무형문화재 영상기록물 , 제작사업 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다. 전통공연예술을 일반인들에게 확산하기 위해선, 영상기록의 중요성이 절실했다. 인천지역의 무형문화재의 기록을 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일을 추진했다.

차부회는 이런 일을 일찍부터 하고자 했고,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이런 일을 처음 경험했던 배경에는 김순제가 있다. 청년 차부회는 일찍부터 김순제(1922 ~ 2010)교수의 필드워크를 쫒아 다니고, 데스크워크에 관해서 들으면서, 언제가 자신도 이런 일들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김순제와 차부회는 인천 문화재를 발굴하는 여러 현장을 함께 했다. 강화도 외포리에서 3박 4일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이러면서 ‘인천 근해 뱃노래’도 듣게 되었다. 이 시기는 차부회에게 있어서 매우 독특하고 귀중한 시기였다. 전통예술에 대해서 다양한 기예를 알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 연구해나가면서, 이 시대 사람들과 바람직하게 공유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만들어가는 시기였다.

 

은율탈춤 1과장 가면과 의상 전시(은율탈춤 전수관)
은율탈춤 1과장 가면과 의상 전시(은율탈춤 전수관)

 

차부회와 청소년 탈춤교육

차부회가 가장 잘 한 일은 무엇일까? 인천지역의 청소년들에게 탈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섭섭한 일도 꽤 많았다. 은율탈춤의 청소년들이 누가 보더라도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데, 제대로 등수를 받지 못하거나, 등수에서 탈락됐을 때 차부회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차부회는 청소년 탈춤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손꼽는 인물이다. 2002년 11월 2일, 제14회 전국청소년 탈춤경연대회 우수연희지도자상 수상했다.

‘인천세계어린이민속축제’는 차부회가 없었으면 기획되고 실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송도유원지에서 펼쳐졌다. 2002년 12월 27일, 차부회는 무형문화재 표창(인천광역시장)을 받았다.

“인천에서 여러 세계의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속춤으로 함께 교류하고 세계의 평화를 목표하는 축제였습니다. 자부심을 가질 만큼 의미 있는 축제였으며 인천 시민들과 하여금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차부회 명인에게 청소년기에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그를 존경하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기본에 대한 강조’이다. 탈춤을 추는 기본 동작은 물론이요, 탈춤을 추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가치관 확립을 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 탈춤을 추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절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일찍이 양소운 명인이 아들 차부회가 탈춤을 춘다고 했을 때 극구 반대하다가, 그럼 ‘탈춤을 추며 돈을 벌려 하지 말고, 탈춤을 추는게 즐거우면 계속 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차부회 명인의 자제와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둘째는 ‘끊임없는 연구’다. 은율탈춤은 다른 탈춤에 비해서 인기종목이 아니다. 같은 해서탈춤 중에선 봉산탈춤이 더 알려져 있다. 한반도 북쪽지방의 탈춤 중에서 북청사자놀이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차부회는 이렇게 탈춤 중에서 ’비인기 종목‘인 은율탈춤을 어떻게 널리 알리까 고민한다. 그 해결방안으로서 은율탈춤에는 기본무를 만들었다.

오랜 기간 연구하면서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기본무는 현재 은율탈춤 교육현장에서 실제 활용되며 큰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탈춤의 동작들을 난이도별로 정리해서, 보다 체계적으로 탈춤의 실력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 있다. 차부회의 이런 열정적 노력은 때론 주변사람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고민과 연구를 통해서 은율탈춤을 비롯한 ’탈춤의 미래 전승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실천에 옮기고 있다.

셋째, ‘대가 없는 베풂’이다. 그 동안 차부회는 청소년들에게 탈춤을 수없이 강습해 왔다. 전수학교를 통해서 가르치기도 했고 ‘탈사랑’을 통해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 늘 어린 제자들이 많았는데, 단 한 번도 그들에게 개인적 대가, 이른바 레슨비를 받은 일이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어린 제자들이 배고프지 않게 밥을 사주고 챙겨주었다.

 

차부회 은율탈춤보유자와 윤중강 평론가(사진 = 유광식)
차부회 은율탈춤보유자와 윤중강 평론가(사진 = 유광식)

 

탈춤, ‘창작극’으로 거듭나다

차부회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은율탈춤 기획공연 <말뚝이, 대한민국에 당도하다> 2020년 <탈춤, 과거와 현재를 잇다!> 등 기획, 총연출, 예술감독을 맡아서, 전통의 탈춤이 어떻게 이 시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2016년 12월 공연단체 ‘위로’가 창단되었다. 단체의 어른 역할은 차부회가 맡았지만, 이 단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과거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탈춤과 전통예술의 ‘동 시대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오기 시작하는 것일까? 2017년 창작극 ‘별탈 없음’, 2018년 창작극 ‘사방팔방’,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공연된 창작극 ‘미천’은 탈춤을 활용한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인천의 탈춤명가의 2대 차부회가 서서히 3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과정은 그들 세대가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창작 탈춤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이런 노력과 재능을 자연스럽게 물러 받은 아들과 딸이 중심이 되어서, 그들의 세대와 함께 탈춤을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콘텐츠를 즐기게 하려는 애정과 배려가 그대로 느껴진다.

2014년 12월 28일, 창사7주년 특집 OBS '명불허전'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여기에 출연한 차원철(차민욱)은 3대로 나아가는 전통 탈춤의 맥, 그 뿌리 깊은 가족의 이야기를 펼쳤다.

진행자 유인촌은, 전통 탈춤의 맥은 2대인 차부회 선생에서 그치지 않고 3대인 그의 젊은 아들, 딸에게로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방송에서는 현재 은율탈춤 이수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차부회 선생의 아들 차원철과, 딸 차은선이 자리를 함께해 대를 이어 전통을 계승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탈춤은 이제 한국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한민국에서 탈춤을 전승하고 있는 지역은 많이 있으나, 인천이라는 지역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인천에서 은율탈춤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은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을 품었던 많은 분이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많은 분이 바로 인천에서 살았다. 인천에서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실향민들의 문화는 앞으로 인천이 소중하게 꽃을 피워야 할 ‘인천문화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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