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들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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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들이 울고 있다
  • 이혜정
  • 승인 2011.05.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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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3년] 처우 여전히 열악 … "공공성 강화해야"


월 100만원 미만의 급여. 사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요양보호사들이다.

취재 : 이혜정 기자

# 1. 요양보호사 이모(51·여 남동구 구월동)씨는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자에게 섭섭하다고 하소연했다. 수급자이면서 홀몸노인인 대상자에게 이씨는 부모를 모시듯 온갖 정성으로 서비스를 다했다. 심지어 경제적 어려움으로 식사를 거르는 대상자가 마음에 걸린 그는 사비를 들여 반찬을 만들거나 간식거리를 사다 주기도 했다. 원칙적으로는 대상자에게 사비를 들여 서비스를 제공하면 안 되지만 식사를 거르는 대상자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대상자는 요양보호사가 사비를 들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당연히 여기고 더 많은 요구를 했다. 이 요양보호사가 원칙 이외의 서비스 제공을 거절하자 대상자는 서비스의 질을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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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요양보호사 김모(55·남구 주안동)씨는 몇 달 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70대 경증 할아버지 집에서 집안 청소를 해주고 있는데, 느닷없이 할아버지가 김씨를 뒤에서 와락 안았다. 그는 처음에 놀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런 일이 수차례 발생하자 김씨는 "어르신 이러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대상자는 "이러면 좀 어떠냐"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김씨는 할아버지 가족들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정신이 멀쩡하면 왜 서비스를 받겠느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할아버지도 "나 치매인데, 몰랐어"라고 부인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상자가 서비스 질이 낮다며 다른 요양보호사로 교체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김씨는 억울했지만 일자리를 잃었다.

가족에게만 맡겼던 노인 돌봄·부양을 사회가 함께 뒷받침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노인장기 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돼가지만 현장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지난 2008년 7월 노양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본격 실시되기 이전부터 별다른 시험 없이 일정 교육만 받으면 자격증 취득을 하고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광고로 '신종 직업군'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길러 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요양보호사'국가자격증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제도 시행 초기부터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면서 인력이 과잉 공급되고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장기요양기관 센터 난립으로 인한 치열한 경쟁구도 안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심적 부담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고된 노동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과 요양보호사에 대한 서비스 이용자와 가족들의 인식부족으로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어

상당수 요양보호사들이 일자리가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이 급증함에 따라 요양보호사들도 많이 배출됐다. 제도 시행 3년이 된 현재 요양보호사 수가 장기요양 서비스 이용자에 비해 배로 증가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로 됐다.

이처럼 요양보호사 인력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돈벌이에 급급한 상당수 장기요양센터들은 이용자 본인부담금 15%를 면제하거나 금품과 건강식 등을 제공해주는 등 이용자 확보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경제위기와 더불어 영세한 기관들이 무제한적 경쟁을 하는 현 상황에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양보호사들의 근로조건과 임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인천지역 내 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을 받은 노인들은 1등급 2천370명, 2등급 4천178명, 3등급 1만1천24명 등 총1만7천572명이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은 32곳에 이르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요양보호사는 2008년부터 현재(2011년 1분기)까지 4만846명에 달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자격증을 취득했더라도 취업을 하려면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요양보호사들은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임금을 받더라도 항의를 할 수 없는 처지다.

한 요양보호사는 "자격증을 따고 일을 하더라도 일자리가 많지 않아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이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면서 "보통 1년 계약을 채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 두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50대 이상 여성들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하는데, 혹시나 이용자가 '보호사를 바꿔달라고 할까' 하는 두려움에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참는 경우가 많다"면서 "센터는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돈보다는 '봉사정신' 요구

실제로 현장에서 요양보호사들이 받는 비용은 시급 6천~7천원선이다. 요양보호사들은 일주일에 2~5차례씩 하루 최대 4시간 동안 1~2명의 노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용을 따져보면 적게는 48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안팎의 임금을 받는 셈이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설 요양보호사의 경우 2교대제로 근무하며 평균적으로 임금 123만2,400원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 3,950원을 받고 있는 꼴이다.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 사태가 더 심각하다. 이들의 평균 급여액은 82만1,519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재가요양보호사 61%가 월 60만원 이하 임금을 받으며, 14%는 30만원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정도는 한 달에 10일도 일하지 못하고 4대 보험 혜택 역시 제외되고 있다. 시설 요양보호사는 12시간 맞교대 혹은 24시간 격일제, 심지어 24시간 연속 거주형 시설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일부 재정여건이 어려운 노인복지시설은 의무채용 기준에 따라 요양보호사를 채용할 시 근로자에 대한 4대 보험가입 또는 인건비 등 기관 운영비가 지출되지 않은 시간제나 비정규직을 선호하기도 한다.

인식부족으로 파출부 취급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발생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과 가족들은 요양보호사들에게 청소, 빨래, 설거지 등 파출부와 다름없는 집안일을 시키기도 한다.

한 시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집안일 등을 도와주는 파출부로 취급해 답답하다"면서 "심지어 물값과 전기료 때문에 세탁기가 있어도 손빨래를 하라고 하고 가족들  빨래까지 하라고 할 때도 있어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말했다.

정부 역할 강화하고 공공성 높여야

요양보호사들의 처우가 열악한 것은 정부가 요양보호사 관련 시설과 인력관리 등을 '시장'에 맡겨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따라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전반적으로 감독·관리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를 만들어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이들의 제언이다.

유해숙 서울 사회복지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공공영역에서 책임을 져야 할 정부 서비스가 시장에 맡겨지다 보니 이윤을 추구하려는 경쟁적 구도 속에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면서 "노인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의 처우가 우선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서비스 질이 하락하는 건 당연지사"라고 말했다.

종합적인 욕구를 지닌 인격주체인 노인들에게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줘야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유 교수는 "근본적으로 요양보호사 처우개선과 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통합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된 시점에서 총제적인 검토를 통해 보완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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