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의 지향을 잃지 말아야" - 안병일 /책방시점 책방지기
이런 보릿고개는 처음이야
“요새 경제가 이러이러해서 어려운 상황이니까 자영업자들 힘들다는 야마(산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이나 언론계에선 핵심, 특종 등의 비속어로 많이 활용)로 취재해봐.”
저는 지역 일간지에서 신문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경기가 안 좋았던 탓인지 선배들은 자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취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늘상 ‘사장님’들을 만나면서도 그 어려움이 실감나진 않았습니다. 남의 일이었고, 전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았으니까요. 그땐 정말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책방 지기가 되고 나서야 어려운 상황을 실감합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을 예측할 수도 없고 뚜렷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 책방이 있는 강화도는 여행객이 많다보니 여러 이슈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북한과 사이가 안 좋으면 바로 얼어붙는 곳이 이곳입니다. 북한에서 방사성 물질이 강화로 유입됐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한동안 썰렁했어요. 돼지열병으로 강화의 모든 돼지가 살처분 당하던 무렵에도 손님이 뚝 끊겼죠. 강화로 들어오는 두 다리에서 방역 소독을 하면서 교통 체증이 심했기 때문이에요. 1년 남짓 운영했을 뿐인데 한숨 나오는 상황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에 비하면 앞의 상황들은 장난에 불과했습니다. 2월 중순부터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운영하던 인문학 강좌와 글쓰기 모임을 취소했습니다. 3월부턴 아예 손님이 뚝 끊겨 오전 시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할 정도였죠. 책방 운영이 안 된다고 해서 “책방에 놀러 오세요”라고 말하기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심지어 올 4월은 지난해 4월보다 매출이 안 나올 정도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왜냐면 저희는 지난해 4월20일에 문을 열었거든요. 무명의 책방이 문을 열고 열흘 동안 책을 팔아봐야 얼마나 팔았겠어요. 그런데 한 달 내내 문 연 책방이 그보다 못했으니 말 다했죠.
우리는 그래도 직접 집을 짓고 1층에 책방을 연 터라 임대료 부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책방들이 코로나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SNS 피드를 가득 채우던 다양한 모임과 활동 소식 대신 ‘오늘 문 닫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공지 글이 적잖이 올라왔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공간들이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코로나가 알려준 두 가지: 일상의 소중함, 정체성
동네책방은 책을 파는 공간인 동시에 책을 매개로 사람이 모이는 문화 공간입니다. 막내 책방인 저희도 매주 두세 번씩 강좌, 모임을 진행할만큼 분주했죠. 하지만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책방지기들끼리 텅 빈 책방을 관조하며 “책 좋아하는 분들이 원래 시민의식이 투철해. 그러니까 오고 싶어도 지금 일부러 참고 안 오는 거야. 얼마나 고마워? 덕분에 코로나 걸릴 걱정 안 해도 되잖아”라고 위로했죠.
그래도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도서관도 모두 문을 닫았고 독서모임도 대부분 운영을 중단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100일동안 온라인 독서모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서른 네명의 ‘책 동무’들과 책수다를 나눴습니다. 세 권 이상 책을 구입하는 경우에 한해 ‘책 배달’ 서비스도 기획했죠. 코로나 블루에 맞서 일상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책을 선정해 온라인 배송도 시작했구요. 격주로 이곳 인천in 통해 책방지기들이 책을 추천하기도 하구요.
반응은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왔습니다. 동네 분들은 물론. 서울과 인천, 김포, 멀리 목포에서도 일부러 책 주문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어요. 책 한 권, 사람 한 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책방도 조금씩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는 분, 코로나 덕분에 가만히 앉아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됐다는 분들의 응원이 다시 힘을 내게 했죠.
책방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알려지면서 손님 한 명 더 찾게 하고, 책 한 권 더 팔아야겠다는 욕심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이니까요. 그러다보니 밤늦게 일하는 일이 늘고 자꾸 욕심만 쌓였습니다. 이렇게 하다간 오래 못 버틸 것 같았고, 좋아하는 책이 싫어질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계속 성장하고 잘 나가는 책방보단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곳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책방 운영에 작은 변화를 줬습니다. 예약제를 도입해 한 팀이 최대 두 시간까지 쾌적하게 머물 수 있도록 했죠.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면서 조금씩 책방을 찾는 분들이 늘 무렵 결정한 일입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였는데 책방지기를 비롯해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것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죠.
6월부터 재개한 책방 강좌도 지금은 최소한의 규모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직전엔 작은 책방에 스무 명 넘게 참여할 정도로 인기였지만 지금은 너댓 명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백번 양보해 마스크 쓰고 서로 조심하는 조건으로요. 덕분에 책방은 전에 없이 쾌적하고 주말에도 손님 한 명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 수나 더 많은 수익이 아니었어요. 책방지기가 지치지 않고 즐겁게 책에 집중해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을 확보하는 것,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편안함 속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코로나 보릿고개에 휘청이며 나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 1라운드였습니다. 이제부턴 2라운드입니다. 일상의 소중함과 우리의 지향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속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았으니까요. 그래도 걱정은 접어두렵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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