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은 자는 도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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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은 자는 도둑뿐이다!”
  • 최원영
  • 승인 2022.02.2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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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41화

 

 

몇 차례의 영상을 통해 우리는 중도의 길, 즉 시선을 조금 더 확장해서 반대편까지 헤아리는 지혜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중도의 지혜를 이해하게 되면 《나는 당신입니다》(안도현)에서 인용한 한수산 소설가의 다음 글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실 겁니다.

“하염없다거나 덧없다거나 그런 말조차 초라하게만 느껴지게, 이따금 사막 저편을 쓸고 가는 바람 소리 같은 것만 들릴 뿐 막막한 정적이 나를 감싸고 있다. 왜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안에서 나는 이제야 평화로워지는 것일까. 이것을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아니 행복이라거나 하는 그런 말로 감싸질 수 없는 이 표표한 마음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을까.”

이해되시지요? 바쁜 일상도 나의 한쪽이고, 막막한 정적이 감싸는 공간도 나의 한쪽임을요. 그리고 이 두 개의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바쁠 때는 바쁜 그 일에 열중하고, 고요할 때는 그 고요함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그런 태도가 곧 중도의 길입니다.

이 글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책상이 없는 사람은 그걸 가지면 무슨 일이든 잘 될 거라고 여긴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여긴다.

날이 갈수록 책상 위에 쌓일 골칫거리들이, 사랑 때문에 생기는 복잡한 감정들이 보이지 않을 땐 그렇다.

하나라도 더 가짐으로써 생기는 불편은 때로 우리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베란다가 허전해 화분을 하나 들이면, 잊지 않고 물을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벌레가 끼어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비로소 평화로워진다는 작가의 말에 당신도 공감하리라.”

중도의 길이란 나쁜 일도 ‘반면교사’로 삼는 태도를 말합니다. 부정적인 것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배움의 계기로 삼는다는 겁니다. 중도의 길을 걷는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꼽 철학》(임숙경)에 아인슈타인의 일화가 나옵니다.

“그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은행을 갔다. 용무를 마치고 차에 오니 오버코트가 없어졌다.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이 잘못이야. 보이지 않는 곳에 둬야지.’

‘아니야, 운전기사가 부주의해서야.’

그런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맞아. 우리 세 사람 모두 나빴어. 나쁘지 않은 자는 도둑뿐이야. 그는 그것으로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웃음을 자아내는 사례지만, 참으로 여유가 있는 아인슈타인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 추측으로는 아인슈타인도 다음부터는 코트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했을 겁니다. 이게 반면교사이겠지요.

이제 우리는 오버코트를 도둑맞은 아인슈타인이 왜 “나쁘지 않은 자는 도둑뿐이야!”라고 말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짧은 영상과 글 속에 담긴 중도의 지혜를 통해 여러분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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